방미 프로필 나이 집안 결혼 남자친구 재산(부동산, 집) 근황

가수 방미가 12월 10일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한다.

이날 방송에서는 방미가 마이웨이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를 공개한다.

이에 방미의 나이 프로필, 결혼 여부, 남자친구 근황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오늘은 가수 방미에 대해 알려진 정보들을 모아 정리해보았습니다.


방미(가수) 본명 나이 고향 가족 종교 학력


미국 방문

가수 방미의 본명은 박미애이다.

방미 나이는 1960년 4월 27일생으로 올해 63세입니다.

미국 방문 고향은 서울이고, 가족으로는 여동생이 한 명 있다.

미국 방문 종교는 개신교이며, 학력은 송곡여고를 졸업하고 이후 뉴욕 브루클린대학교에서 연출과 연극을 전공했다.


미국 방문 (가수) 프로필

방미는 1979년 MBC MC·개그우먼 2차 전형에 합격해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 데뷔했다.

그는 개그맨으로 활동하다가 신인 시절 발표한 곡 ‘날 보러 와’가 큰 히트를 치면서 가수로 전향했다.

이후 미국 방문을 주저하지 마세요, 계절이 두 번 바뀌면, 욕심쟁이 여자 등의 히트곡을 남겼습니다.

그는 현재 사업가이자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다.

* 민해경

민해경

가수 민혜경(가수) 남편 이인수 나이(차이) 직업 딸 근황 가수 민해경이 오랜만에 방송에 출연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2020년 12월 19일 KBS2 ‘불후의 명곡’에 출연했고, 1월에는 ‘민’에도 출연했다.

미국 방문 (가수) 과거의 가족


미국 방문

방미는 어린 시절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방미의 아버지는 화투와 도박에 빠져 가족을 돌보지 않았고, 어머니는 남대문 옷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간신히 생계를 유지했다.

방미: “저희 어머니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연약한 분이셨는데, 아버지는 북한에서 홀로 내려오셨어요. 엄격하셨어요. 외로움과 고통을 도박으로 달랬어요. 제가 17살 때부터 아버지는 가족을 소홀히 했고, 재정적으로 “매우 불규칙했다.

게다가 아버지가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방미: “어렸을 때 집이 너무 가난해서 항상 부족한 점이 있었어요. 항상 불안해야 했어요.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수없이 옮겨야 하니까 슬프고 힘들었어요.”

방미: “화투를 너무나 사랑하신 아버지 때문에 우리 집안은 항상 불안하고 불규칙하고 돈도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방미는 연예인이 되어 돈을 많이 벌어 가난에서 벗어나겠다는 꿈을 품게 됐고, 결국 그 꿈은 열여덟 어린 나이에 개그맨으로 이뤄졌다.


미국 방문 (가수) 개그맨 데뷔

방미: “반란을 일으킨 건 바로 나예요. 19세쯤에 방송국에 일을 시작했을 때 어머니를 데리고 왔어요. 부모님과 이혼했어요.”

방미: “저와 남동생은 술집에 안들어가서 다행이라는 말을 가끔 해요. 둘 다 얼굴이 흰 편인데 저는 어려서부터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배웠어요. 아버지, 저는 더 이상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이로써 방미는 어머니를 부양하게 됐고, 결국 아버지의 큰 영향으로 돈에 대한 강한 가치관을 갖게 됐다.

방미: “결국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남겨주신 유일한 교훈은 돈이 없으면 살 곳을 찾기 위해 자주 이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돈이 없으면 살 곳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 원하는 것을 살 수도 없고 할 수도 없고, 돈이 없으면 가족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 “사람도 행복할 수 없다는 잔인한 교훈이었습니다.

미국 방문 (가수) 가수 데뷔 앨범 활동


미국 방문

이후 신인 개그우먼으로 미국 방문 중 발표한 곡 ‘날 보러 와’가 큰 인기를 끌며 영화로도 제작됐다.

이후 1980년대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의 히트곡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1984년 동경음악제 은상, 1985년 KBS 방송가요대상 여자 부문을 수상했다.

미국 방문 (가수) 부동산 투자로

이후 사업가로 변신한 방미는 우선 자신이 출연한 영화 ‘날 보러 와’에서 700만원을 들여 대전 유성온천 인근 땅을 샀다.

이 땅은 12년 만에 20배가 넘는 1억 5천만원에 팔렸습니다.

방미는 부동산 투자의 즐거움을 배우기 시작한다.

이어 방미는 강남 지역 아파트를 구입해 3년 만에 5배가 넘는 가격에 팔았다.

방미: “많은 동료들이 즐겁게 놀고, 돈 쓰고, 자랑하고, 명품과 비싼 외제 차를 사고, 해외 쇼핑을 가면서 나는 미래에 대한 다짐을 했다.

분명 부자가 될 거에요.

방미: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꿈을 이루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래서 싸움을 시작했어요. 20대 후반에 이미 집 4채를 소유했어요.”

미국 방문: “30대 중반이 되자 당장 일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없는 한국의 건물과 주택, 미국의 주택과 사업체 등 상당한 부를 갖게 되었습니다.

내 노고에 대한 보상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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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방문 (가수) 외환차익도


미국 방문

이후 방미는 급성장하던 가요계를 떠나 1990년대 돌연 미국으로 건너가 사업을 시작했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사기를 당하는 등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결국 방미는 보석상을 운영하고, 부동산에 투자하고, 외화차익까지 활용해 큰 재산을 모았다.

당신은 돈을 벌 것입니다.

미국방문 : “1993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었고, 1998년 초에 유학자금이었던 현금 14만달러와 생활용품, 고가의 메르세데스 자동차를 팔아 1998년 초에 달러를 한국으로 돌려보내 한달만에 환차익이 2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뉴욕 콘도 구입을 위한 투자금으로 다시 사용했습니다.

1998년 한국에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환율이 두 배 이상 뛰었다.

이것이 바로 미국 방문이 활용한 것입니다.

방미: “그리고 2000년에 뉴욕 업타운에 위치한 30만 달러짜리 주택을 구입했고, 부동산 가격이 가장 높았던 2004년에 팔아 차익을 챙겼습니다.

또 2006년에는 리버사이드에 콘도를 구입했고, 맨하탄에 팔렸고 1년 만에 팔렸다”며 “두 배 가격에 되팔아 차익을 챙겼다”고 말했다.

이로써 방미는 200억 원의 부를 창출했지만, 방미의 투자방식(특히 부동산)은 사람들로부터 많은 어려움을 겪는 불로소득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방미: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은 투기라고 하는데, 저는 부동산은 투자라고 생각해요.”

이후 방미는 구독자 23만 명을 보유한 사업가이자 인기 크리에이터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으며, 아침마당, 사랑을 담은 TV, 비디오스타 등 방송에 간간히 출연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이번에는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오랜만에 출연했다.

미국 방문 (가수) 결혼 남자친구


미국 방문

방미는 63세이며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

현재 남자친구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전 인터뷰 결과를 보면 남자친구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결혼 생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거의 다 해보셨는데 왜 결혼은 안 해보셨나요?”라는 질문에 그는 수십 년간 스몰웨딩을 고민해 왔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방미: “남자가 있다면 하와이에서 남자친구를 갖는 게 꿈이에요. 남자친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아직은 공식적인 일을 하고 싶지 않아요.”

방미: “저는 지금까지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스스로 성취하고 스스로 만들어가기 때문에 별로 외롭지 않아요.”

그리고 과거 방미는 자신의 남자친구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미국 방문 (가수)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

방미: “남자한테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해요. 장사만 한다고요. 그런데 사귄 남자한테는 선물을 줘요. 명품은 안 사줘요. 값싼 것도 사지 말고 대신 차를 사준다.

15만 달러 상당의 고급차를 선물로 준다.

내 사랑. “남자에게 편지를 쓸 때는 명확하게 써라.”

방미: “저를 만났을 때 제 파트너는 대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제 매니저가 되어 야근을 도와주고 저녁 2~3시까지 운전해 주었습니다.

방미: “더러운 일을 다 하면서도 부지런했던 이 친구는 두 시간 자고 새벽에 학교에 가서 공부해서 대학을 졸업했어요. 이 시간이 얼마나 감사한지 결코 잊지 못할 거예요.”

방미: “전성기였어요. 매일같이 바쁜 제 스케줄을 도와주면서 대학을 졸업했어요. 정말 좋아했던 건 음악이었어요. 하지만 부모님이 원하던 건축공학과에 진학해야 했고, 그 이후에도요. 졸업하고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때는 1989년쯤이었습니다.

당시 나는 20대 후반이었고, 남자친구도 겨우 20살이었습니다.

사실 저보다 어린 남자친구는 5살 어린데 그보다 나이차이가 더 큰 것 같아요.

남자친구는 나중에 한국 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UCLA에서 음악프로듀싱을 전공했습니다.

방미: “제가 연예계 활동할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스캔들이 터지면 연예인의 삶이 끝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숨죽이며 만나서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

방미: “나이차가 많이 나서 누구한테 자랑하고 말하기가 힘든 시기였어요. 자산을 쌓는 과정 후반부에 많은 조언과 도움을 주셨죠.”

방미: “나보다 어리지만 굉장히 똑똑하고 눈물이 많은 남자다.

늘 한결같고 정직하고 부지런해서 모든 일을 정확하게 하는 엘리트다.

나는 이 사람을 파트너라고 부른다.

방미: “그 사람은 저를 만나서 인생의 길을 바꿨어요. 이때 한강변 신동아파트 55평형에 살았고, 방배동에도 삼호아파트를 추가로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미국 방문

방미: “1988년부터 1993년 사이에 아파트 가격이 폭등했어요. 가수로서의 경력도 최고조에 달했어요. 시간을 낼 수가 없어서 파트너가 부동산 일을 도와줬어요. 당시 부동산은 모두가 많이 사고 파는 물건이었죠. 이제 때가 됐어요.”

방미: “대학에 다니던 친구가 계약금과 부동산 잔금을 도와주면서 많은 돈을 모아야 했어요. 자기 돈은 아니었지만 그때 배운 게 많았나 봐요. “

방미: “저희는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친구를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그가 저를 사랑하는 마음을 확실히 알고 그에게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그 친구가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연예계에 들어갔습니다.

“인생을 마감하고 미국으로 이주했습니다.

이후 방미의 남자친구는 한국 대학을 졸업했고, 방미는 미국에서 사기를 당했지만 다시 이모와 함께 뉴욕에서 액세서리 가게를 운영하고 부동산 투자로 많은 돈을 벌었다.

이후 방미는 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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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미: “제가 먼저 서울로 돌아왔고, 친구는 2년 반 더 머물다 UCLA를 졸업하고 나서야 돌아왔어요. 그런데 친구 소식을 듣고 갑자기 주식을 하다가 돈을 잃었다”고 말했다.

방미: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었습니다.

잃어버린 돈을 어떻게 돌려받을 수 있는지 보여줘야 했습니다.

회사 주가가 떨어진 것을 모두 사서 꽤 빠른 시간 안에 원금을 회수할 수 있었습니다.

방미: “파트너가 좋은 건 이래서요. 파트너는 어려울 때 의지하고, 서로 돕고, 다시는 실수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그 후 6개월 만에 주식시장을 그만뒀다”고 말했다.

방미: “주식은 나에게 맞는 투자가 아니다.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주가를 확인하는 것도 싫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걸 좋아한다.

방미: “친구가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어요. 예상대로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벌기 시작했어요. 어렸을 때 제가 하는 일을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공부도 많이 했고, 서울에 있는 대학 두 곳에서 공부했어요. 그리고 미국에서 10년.”공부하면서 뚜렷한 목표가 있었어요.”

방미: “문제는 어떻게 사업을 시작하느냐 하는 문제였는데 오랫동안 가만히 있던 사람에게 투자하기로 했어요.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리자면 그 사람에게 돈을 빌려줬어요. 친구는 친구이고, 돈은 돈이에요.” 돈.나도 똑같아.내 친구도.”당신은 나를 잘 알잖아요.”

미국 방문 (가수) 남자친구와의 결혼에 대한 요즘 생각

결국 두 사람은 아직 정식 결혼식도 치르지 않은 상태이며, 방미의 말을 들어보면 결혼에 대한 생각이나 필요성이 전혀 없어 보인다.

그리고 이후 남자친구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알려진 바가 없으나,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어떠했는지와 관계없이 결혼할 생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방미: “26년 동안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또 만났어요. 특히 하와이는 전성기 시절 스케줄을 나눠 남자친구를 몰래 만나 추억을 쌓았던 곳이었어요.”

방미: “제 남자친구가 비연예인이라 불편해 할까봐 공개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알려지면서 돈에 목숨을 걸고 늙은이로 비춰지고 싶지 않아요.” 그가 부동산 부자이기 때문에 언론이 그랬다”고 말했다.

방미: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성격이 너무 잘 맞아요. 설렘과 긴장의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목소리만 들어도 위로가 되고 힘이 나요. 온화하지만 때로는 형 같고, 그리고 가끔은 모성본능을 자극해서 엄마같기도 하고..”

방미: “매번 새로웠기 때문에 오랫동안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43살쯤에 결혼을 꼭 하고 싶었어요. 당시 남자친구가 미국에서 사업을 확장하느라 바빴거든요.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면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며 “한 가지 생각이 든다.

이것저것 살다 보니 평범한 결혼 생활은 나에게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 방문 (가수) 부동산 집, 어디?


방미 - 집


방미 - 집


방미 - 집

한편 방미는 지난 2019년 TV조선 이사야에서 자신의 청담동 집이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방미의 집 인테리어는 최근 리모델링을 거쳐 깔끔한 화이트 톤으로 꾸며져 있었고, 집에는 고가의 필라테스 장비가 놓여 있었다.

게다가 방 안에는 고가의 명품 가방이 가득했고, 개인 방송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장비도 갖춰져 있어 놀랐다.

당시 방송에서 방미는 청담동 땅값에 대해 “알고보니 (땅이) 평당 2000이었다.

30년 정도 전인데 지금은 4억5000만이다.

평당 원입니다.

방미는 청담동 외에도 제주, 로스앤젤레스, 하와이 등에 주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가수 방미가 스타 다큐멘터리 ‘마이웨이’에 출연해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해 본다.

이상은 가수의 미국 방문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 김범룡

김범룡

가수 김범룡(가수)이 KBS2 ‘트롯 전국체전’에 강원도 지역위원장으로 합류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트롯전국체전은 “김범룡이 트로트 전국체전에 강원도를 이끌 코치로 합류했다”고 밝혔다.